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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이야기

2022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가장 빠른 자동차'

는 뭘 의미하는 걸까요? 제로백이 가장 빠른 자동차? 랩타임이 가장 빠른 자동차? 정말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가장 직관적인 정의는 가장 빠른 최고 속력을 낼 수 있는 자동차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2022년, 지금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자동차는 뭘까요? 부가티 시론? 코닉세그 제스코? 

 

시작하기 전에, 제가 여기서 말하는 '가장 빠른 자동차'는 정확히는 '가장 빠른 양산차'를 의미합니다. 이 '양산'이라는 조건을 떼면, 그러니까 '자동차'로 범위를 넓히면, 1등의 자리는 바퀴 달린 로켓이 차지하거든요. 

 

바퀴 달려 있고 안 날라가니까 아무튼 자동차 맞음

스러스트 SSC는 2개의 제트 엔진에서 11만 마력을 얻으며, 시속 1228km의 기록을 1997년에 내어 지구상 가장 빠른 지상 이동수단의 기록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로켓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동차'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이번 포스트에선 도로에서 탈 수 있고 (돈이 아주 많다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양산차에 집중해봅시다. 

 

1980년대부터 2022년까지

포르쉐 같지만 포르쉐는 아닌 RUF입니다

자, 그럼 시간을 되돌려 봅시다. 1983년, RUF BTR이 최초로 시속 300km를 돌파했습니다. RUF는 포르쉐 911의 섀시를 기반으로 더 하드코어한 911을 만드는 제조사로, BTR의 후속작인 '옐로버드' CTR로 유명한 회사죠. BTR은 3.4L 터보 엔진으로 374마력을 냈습니다. 

 

이후 2005년, 부가티 베이론 EB 16.4에 의해 시속 400km의 벽이 깨졌습니다. 저처럼 2000년대 초반에 차에 관심이 있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로 각인된 자동차였을거에요. 8리터 16기통에 4개의 터보차저까지 달아 1001마력을 냈습니다. 요즘이야 네자릿수 마력을 내는 하이퍼카가 흔하지만, 그 땐 1000마력을 넘겼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어요.

 

5년 뒤, 부가티는 베이론 슈퍼 스포츠로 다시 한 번 기록을 갱신합니다. 이번엔 같은 엔진이지만 출력을 높여 1199마력을 냈고, 초고속에서 안정성을 위해 한 세트에 6천만원짜리 전용 타이어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죠. 전자 제한을 해제하면 431km/h의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2017년, 왕좌는 스웨덴의 회사가 차지합니다. 코닉세그 아제라 RS가 447km/h의 속도를 기록하면서 가장 빠른 양산차에 등극한 것인데요. 재미있는 건 코닉세그는 애당초 이 자동차를 최고 속도를 염두에 두고 만든게 아니었습니다. 최고 속도 측정은 생각도 없었는데, 오너의 제안에 해봤다가 덜컥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가 되었다네요.

 

2017년부터 2022년 10월 오늘날까지, 기네스북이 인정하는 가장 빠른 양산차는 아제라 RS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의문이 드는 분들이 있을거에요. 분명 447km/h보다 빠른 하이퍼카들이 있거든요. 

 

기네스북이 인정하지 않은 최고 속도 기록들

SSC 투아타라

아제라 RS의 왕좌를 가장 빠른 시일 내에 뺏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경쟁자입니다. 기네스북에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하이퍼카 업계쪽에서는 SSC 투아타라를 가장 빠른 양산차로 인정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SSC는 미국의 하이퍼카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소규모 제조사입니다. 워낙 규모가 작아 인지도가 적지만, 2000년대 초반 부가티가 왕좌를 차지하던 때에 SSC 얼티밋 에어로라는 SSC의 첫 양산차로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잠시 가져간 적 있어요. 

 

SSC는 자사의 신작, 투아타라로 다시 최고 속도 경쟁에 재도전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그런데 투아타라의 기록 측정에는 잡음이 좀 있었습니다. 2020년, SSC는 투아타라로 시속 331마일, 그러니까 532km에 도달했다고 밝히며 기록 측정 영상을 공개했는데요.

 

일부 자동차 유튜버들이 영상을 분석하며 기록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고, 이후 투아타라가 기록 측정에 사용한 측정 기계 회사측이 자사는 관여한 바가 없으며 기록의 진위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SSC는 '영상 편집 중 실수가 있었다'라며 조작을 시인했고, 많은 하이퍼카 팬들에게 욕을 먹었죠. 

 

SSC는 오명을 씻기 위해 최고 속도 측정에 재도전했습니다. 여러 번의 도전 끝에 2022년 5월, 474km/h을 기록했습니다. 2020년 주장한 532km/h에 비하면 많이 느려졌지만, 여전히 아제라 RS의 447km/h는 뛰어넘는 속도죠. 

 

SSC 투아타라가 이렇게 가장 빠른 양산차의 자리를 차지하나 싶었는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공도 주행이 불법이거든요. 기네스에 따르면 가장 빠른 '양산차'에 기록을 올리기 위해선 판매용으로 25대 이상을 양산하고, 공도 주행 허가를 받아야합니다. 

 

부가티 시론 슈퍼 스포츠 300+

이름에서부터 시속 300마일을 넘겼다는, 부가티 시론의 직선 속도에 스탯을 몰빵한 버전, 부가티 시론 슈퍼 스포츠 300+입니다. 300마일이면 약 482km이니 아제라 RS보다 40km/h가량 빠른 자동차일텐데요. 

 

19년 8월 2일, 부가티 시론 슈퍼 스포츠 300+은 최초로 300마일을 돌파한 양산차가 되었습니다. Ehra-Lessien에 위치한 폭스바겐 소유의 테스트 트랙에서 490km/h의 속도를 기록했는데요. 

 

이후 2020년부터 부가티는 최고 속도 기록에 사용된 자동차와 동일한 스펙의 슈퍼 스포츠 300+를 30대 양산했고, 올해 30대 모두 고객에게 인도했습니다. 또 공도 주행도 허가 받았구요.

 

부가티의 발목을 잡은 건 Ehra-Lessien의 테스트 트랙의 특성이었습니다. 기네스북은 최고 속도를 측정할 때 양방향으로 측정한 뒤 두 속도값의 평균을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도로의 내리막이나 맞바람 등의 변수를 걸러내기 위함인데요. 

 

부가티는 Ehra-Lessien의 테스트 트랙에서 한방향으로만 기록을 측정했습니다. 부가티의 설명에 따르면 Ehra-Lessien의 테스트 트랙에서 수십년 동안 시계 방향으로만 주행을 했기 때문에 아스팔트의 고무 입자가 시계 방향으로 쏠려 있다고 합니다. 만일 반시계 방향으로 주행한다면 타이어가 과열된 것으로 예상되어 반대 방향으로는 주행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여담으로, 부가티는 시론 슈퍼 스포츠 300+ 이후로는 이 정도로 빠른 자동차를 만들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나중에 계획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부가티의 계획에 따르면 슈퍼 스포츠 300+가 부가티가 만든 가장 빠른 자동차가 되겠네요.

 

외전 - 코닉세그 제스코 앱솔루트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자동차가 왕위를 빼앗지 못한다면, 코닉세그가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닉세그의 최신 하이퍼카, 제스코 (또는 예스코) 의 직선 속도에 집중한 버전, 제스코 앱솔루트가 곧 출시되거든요. 1600마력에 공기 저항 계수는 양산차 중 가장 낮은 수준에 근접한 0.278을 찍었습니다. 코닉세그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시속 330마일, 즉 시속 531km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물론 시뮬레이션과 현실을 다르니, 제스코 앱솔루트가 현실에서 얼마나 빠를지는 테스트를 해봐야 할겁니다. 제스코 앱솔루트는 2023년 3분기에 양산될 예정입니다. 코닉세그의 CEO는 제스코 앱솔루트보다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들 계획이 없다고 하니, 제스코 앱솔루트가 최고 속도 기록을 경신한다면 아주 오랫동안 가장 빠른 양산차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겠네요. 

 

 

 

 

사용된 사진 자료

Thrust SSC by Insomnia Cured Here

1981 RUF BTR by CarScoops

Bugatti Veyron EB 16.4 by Bugatti

Koenigsegg Agera RS by Koenigsegg AB

SSC Tuatara by MotorTrend

SSC Ultimate Aero by Nate Hawbaker

Bugatti Chiron Super Sport 300+ by CarBuzz

Koenigsegg Jesko Absolut by Motor Tr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