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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이야기

뉘르부르크링의 새로운 왕 | 메르세데스-AMG ONE 이야기

11월 10일, 메르세데스-AMG ONE이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6:35:183초의 랩타임을 기록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서킷으로 알려진 뉘르부르크링은 많은 제조사들이 자동차를 테스트하는 시험대이자 자동차의 성능을 증명하고 뽐내는 무대로 사용하는데요. 이전까지 6:42:300초의 기록으로 포르쉐가 지키고 있었지만, 7초 가량 빠른 기록으로 AMG가 가장 빠른 양산차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온갖 기대와 무시를 받은 자동차, AMG ONE의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뉘르부르크링의 새로운 왕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쉽고 간단하게 풀어볼게요.

 

공도를 달릴 수 있는 F1 레이스카

 

AMG ONE은 2017년 공개와 동시에 전세계적인 기대를 받았습니다. AMG는 자사 F1팀의 레이스카 엔진을 넣은 하이퍼카를 양산하겠다고 발표했거든요. 모두가 AMG ONE이 출시되면 다른 하이퍼카들을 모두 서열정리하고 하이퍼카의 역사를 새로 쓸 것이라 예상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 F1에서 AMG는 극강의 챔피언이었거든요. 2014년부터 F1 레이스카의 엔진 규격이 자연흡기 V8에서 터보 V6 하이브리드 엔진으로 바뀌었는데, 이 하이브리드 엔진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한 AMG가 2014년부터 꾸준히 챔피언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점점 미뤄지는 출시, 낮아지는 기대

 

하지만 AMG는 예고했던 2019년이 되어서도 자동차를 완성할 수 없었어요. F1 엔진을 양산차에 넣는다는 것 자체가 큰 난관이었습니다. 자동차 역사상 그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는 도전이었어요.

 

 

 

시간을 좀 되돌려 보면, F1 엔진을 양산차에 넣는 시도를 한 건 벤츠가 처음은 아닙니다. 페라리의 F50 역시 F1 엔지니어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F50에도 F1 엔진을 넣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내구성과 안정성 문제로 배기량을 크게 늘리고 rpm을 많이 제한하는, F1 엔진에 뿌리를 둔 완전히 다른 엔진을 넣는 것으로 타협해야 했어요.

 

 

1.6리터 V6이라는 점에서부터 F1 엔진은 양산차 엔진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러니 AMG는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해가야 했습니다. 1.6리터 싱글 터보 하이브리드라는 원본 엔진의 레이아웃을 유지하면서, 1만 rpm에 가깝게 돌리면서 1천 마력 정도를 낼 수 있고, 무엇보다 공도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나고, 배기가스 기준을 통과할 수 있어야 했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브렉시트와 코로나는 개발 과정을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5년이 지나서야 자동차가 완성되어 양산 단계에 들어갔는데요. 

 

 

 

AMG가 2022년에 내놓은 결과물은 2017년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자동차는 하이퍼카치곤 무거운 1.7톤에 가까운 중량을 가졌고, 기어박스는 싱글 클러치라 변속이 느렸으며, 엔진은 5만km마다 오버홀을 해야하는, 양산차에게서 듣도 보도 못한 짧은 수명을 가졌어요.

 

 

 

그에 비해 AMG ONE과 비슷한 시기에 공개되고 비슷한 F1 컨셉으로 개발된 애스턴 마틴 발키리는 500kg 가량 가벼우면서 더 높은 다운포스를 만들고, 더 높은 엔진 출력을 냈어요.

 

극강의 F1 성능을 공도로 가져올 줄 알았는데, 5년이나 기다려 완성된 자동차는 페이퍼 스펙상으론 경쟁자와 비교해 나을 게 없었어요. 상황이 이렇게 되니, 사람들은 AMG ONE은 도대체 뭘 목적으로 만든 자동차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공도용 F1 엔진을 만들어내는 건 성공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요?

 

아마 AMG의 엔지니어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거에요. 4-5개의 레이스만 버틸 목적으로 만들어진 엔진을 공도 주행용으로 양산한다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인 결정이죠. 만일 F1 엔진을 포기하고 다른 레이아웃의 엔진을 얹었다면 훨씬 안정적이고, 출력도 높고, 무게도 가벼운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을거에요.

 

하지만 벤츠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엔지니어들을 열심히 갈아넣어 최초로 F1 엔진을 넣은 양산차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결과물은 완벽과 거리가 멀었지만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전설적인 자동차들은 대부분 완벽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장 위에 언급한 F50을 예시를 보면, F50은 출시 초기에 욕을 엄청 먹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페라리'로 칭송받는 F40의 후속작이자 맥라렌 F1을 꺾기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인데, F40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것도, 맥라렌 F1을 꺾는 것도 실패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전설이 되었죠.

 

AMG ONE도 아마 비슷한 길을 걷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벤츠의 돈낭비, 트랙 성능이 구린 F1 하이퍼카, 발키리와 비교해서 나을게 없는 자동차로 욕 먹고 있지만, 결국 최초의 F1 엔진을 넣은 양산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이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 것이라 생각합니다. 

 

 

뉘르부르크링 위의 첫 하이퍼카

 

뉘르부르크링에서의 신기록 경신은 AMG ONE의 성능에 대한 의구심을 어느 정도 잠재울 것으로 보입니다. 1.7톤의 무게 때문에 둔하고 느릴 것이라는 의견과 다르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서킷에서 양산차 최단 랩타임을 기록했으니까요. 기록 측정날 트랙이 매우 축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상의 컨디션에서는 6분 30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AMG ONE의 뉘르부르크링 기록 측정이 가지는 진짜 의미는 뉘르부르크링에서 공식 랩타임을 측정한 첫 하이퍼카라는 점입니다. 2019년부터 뉘르부르크링에서 공식적으로 랩타임을 측정하고 기록하기 시작했지만, 어느 하이퍼카 제조사도 공식적으로 랩타임을 측정하지 않았는데요. 때문에 제조사들이 각자의 하이퍼카가 빠르다고 마케팅을 해도 결국 어떤 차가 더 빠른지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AMG가 이제 왕좌를 차지했으니, 다른 제조사들도 뉘르부르크링에 뛰어들 명분이 생겼습니다. AMG ONE을 시작으로 뉘르부르크링 위에서 하이퍼카의 경쟁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사용된 사진자료

AMG-Petronas W07 Hybrid by Andrew Locking

Ferrari F50 by Car Scoop

AMG-Petronas W07 Hybrid engine by Formula1

AMG ONE road car reveal by Planet F1

Aston-Martin Valkyrie by Bloomberg

AMG ONE Engine by Auto Evolution

Ferrari F50 side by Robb Report

AMG ONE on Nürburgring by Car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