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세계의 왓이프...?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포르쉐 911 전문 빌더, 군터 웍스는 만약에...? 라는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90년대의 포르쉐 911이 2022년 지금까지 생산되었다면? 20세기의 911을 21세기의 기술력으로 다시 만든다면?
피터 남 (Peter Nam) 은 이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군터 웍스를 설립했습니다. 군터 웍스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생산된 993세대의 포르쉐 911을 전문적으로 레스토모드 (복원과 개조를 거치는 작업) 하는데요.
피터 남은 911 GT3의 팬이라고 합니다. GT3 버전은 996세대부터 생산되었는데, 996이 수랭식 엔진으로 전환된 첫 세대에요. 그러니까 수랭식 911만 GT3가 있고 그 이전의 공랭식 911은 GT3가 없었습니다. 피터 남은 공랭식 엔진을 넣은 GT3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군터 웍스의 첫 작품, 군터 웍스 993 쿠페가 설계되었습니다. 피터 남의 목표는 딱 하나, 993의 섀시로 현세대 GT3 RS에 근접하는 성능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어요.
20세기 자동차에 21세기 기술 끼얹기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어떤 제약도, 타협도 있으면 안되겠죠. 군터 웍스의 작업은 섀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바디, 인테리어, 전선, 볼트 하나하나 모두 해체해 메탈 섀시만 남긴 뒤, 더 강력한 엔진의 출력을 받아낼 수 있도록 섀시 보강 작업을 진행합니다.
바디도 최신 기술로 다시 만들어야겠죠. 군터 웍스 993은 펜더, 본넷, 도어, 루프 등 바디의 대부분을 탄소 섬유로 만들었습니다. 때마침 피터 남은 탄소 섬유에 도가 튼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군터 웍스를 창립하기 전에는 휠과 탄소 섬유 바디로 유명한 튜너 파츠 제조사, Vorsteiner를 창립했거든요.
엔진은 포르쉐 911 레이싱 팀이자 엔진 빌더로 유명한 Rothsport와의 협업으로 만들었습니다. 현세대 GT3 RS와 동일하게 4.0L 배기량에, 현세대의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8100rpm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요.
출력은 431마력으로, 현세대 911 GT3에 비하면 출력이 적긴 하지만 공랭식 엔진임을 감안하고 봐야합니다. 공랭식 엔진으로 리터당 100마력을 찍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죠.
전설의 환생
이 정도면 군터 웍스의 작업은 단순히 복원이나 개조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993이라는 레거시를 바탕으로 아예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봐야겠죠.
군터 웍스가 쏟아부은 노력은 993의 엄청난 랩 레코드로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재작년, 군터 웍스 993은 라구나 세카에서 1:30:99초의 기록을 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로 빠른건지 감이 안 오신다면, 맥라렌 P1이 같은 서킷에서 1:30:71초를 기록했습니다. 맥라렌 P1은 전기 모터의 도움을 받아 916마력을 내는 하이브리드 하이퍼카인걸 감안하면 군터 웍스 993이 얼마나 빠른 건지 감이 오죠.
군터 웍스 993의 진짜 가치는 이런 어마어마한 성능을 20년전의 스포츠카 안에 담아냈다는 것에 있습니다. 덕분에 993은 아주 현대적인 성능을 내면서도 요즘 자동차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들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911보다 훨씬 작은 차체, 90년대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디자인, 그리고 시장에서는 도태되어 멸종되었지만 독특한 배기음을 들려주는 공랭식 엔진.
군터 웍스 993 쿠페는 단 25대만 제작되었습니다. 모두 사전 주문으로 주문자들의 요구 사항에 맞게 커스텀되어 만들어졌구요. 이후 파생형인 스피드스터 버전이 공개되었고, 올해는 트윈 터보를 달고 700마력을 내는 터보 버전도 공개했습니다.
패키징
패키징은 타막웍스답게 굉장히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하드 케이스에 아크릴 케이스가 담겨져서 와요.
자석으로 붙는 뚜껑을 열면 군터웍스의 모토, A legend was reborn 문구와 함께 아크릴 케이스가 보입니다. 이 정도 패키징이면 선물용으로 사용해도 손색 없겠네요.
하드 케이스 안의 아크릴 케이스는 일반적인 타막웍스의 Hobby 64의 아크릴 케이스와 동일합니다.
한정 생산임을 증명해주는 카드가 들어 있구요.
베이스 플레이트도 타막웍스답게 예쁘게 나왔습니다. 다만 옆에 작은 흠집이 보이는 건 좀 아쉽네요.
모델
모델은 25대의 군터 웍스 993 중 첫 번째 모델이자 개발과 실험용으로 사용된 모델, '그리니치'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녹색 바디에 금색 휠의 조합이 예쁘게 재현되었습니다. 녹색 계열 도색이나 금색 휠 모두 제 취향은 아닌데, 911은 어떤 컬러든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후술할 QC 문제에서도 언급할거긴 한데, 여기저기 도색 위에 흠집..이라고 해야 되나요? 작은 얼룩들이 점수를 깎아먹네요.
전면부의 디테일은 모두 잘 구현되었습니다. 군터 웍스가 자랑하는 할로겐 램프를 대신하는 LED 헤드라이트도 잘 구현되어 있구요.
초록색 색상에 원본 911보다 더 넓어진 펜더 때문인지 위에서 보니 진짜 개구리 같네요.
후면에는 포르쉐 레터링과 후미등 바, 군터 웍스 로고가 적힌 번호판이 보입니다. 스포일러 위의 그릴 형태의 엔진 커버도 디테일하게 표현되었구요.
인테리어 디테일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렌지색 버킷 시트, 운전대의 3스포크 핸들과 5개의 원형 계기판이 실차의 인테리어를 잘 재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작은 디테일으로 원본과 똑같이 뒷좌석 자리에 소화기까지 만들어놨습니다.
QC 문제
제가 정말 좋아하는 993이고 예쁜 모델이라 다 마음에 들뻔했습니다. 여기저기 QC 문제 (마감 불량 문제)를 보기전까지는요. 앞서 언급한 페인트 얼룩 외에도 바퀴를 돌리면 같이 회전하는 캘리퍼와 브레이크 디스크, 비뚤게 붙어 있는 테일 램프 등 다양한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 중 최악은 사이드 미러였는데, 촬영을 위해 모델을 들어 올리다가 사이드 미러에 힘이 살짝 가해졌는데 쿠크다스 부러지듯 사이드 미러가 톡 부러지더라구요. 급하게 순간접착제로 다시 붙이긴 했지만, 접착제 일부가 바디에 같이 붙어 표면이 더러워졌습니다.
형편 없는 마감 처리와는 달리 애프터 서비스는 확실했습니다. 제품을 받았는데 이런 문제들이 있었다는 메일을 보냈는데 타막웍스측에서 남는 제품을 하나 더 보내준다고 답을 받았고, 한 달 정도 걸려 홍콩에서 보낸 대체품을 받았습니다.
타막웍스의 악명 높은 QC 문제는 익히 들어와 알고 있었지만 직접 QC 문제가 있는 제품을 받아보니 이래서 사람들이 욕하는구나 이해가 됐습니다. 어느 정도는 1:64 스케일의 모형이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3만원 가까운 돈 주고 산 제품에서 이렇게 많은 문제가 생기니 많이 실망스러웠어요.
반대로 사후 관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1:64 다이캐스트는 주로 리테일러를 통해 판매를 하기 때문에 제품에 하자가 발생해도 리테일러를 거쳐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저도 처음에 메일을 보낼 때 환불이나 교환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추가적인 비용 없이 새 제품을 하나 더 보내주는 건 사후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거겠죠.
타막웍스의 QC 문제는 사측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타막웍스의 창업자가 QC에 더 신경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언급을 여러 번 했거든요. 다만 QC 문제에 한 번 데여보고 나니 앞으로 타막웍스 제품은 장바구니에 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용된 사진자료
Gunther Werks 993 Coupe by Gunther Werks
Gunther Wendt by Space.com
996 GT3 RS by Road and Track
Gunther Werks 993 Carbonfiber body by Motor1
Gunther Werks 993 Backseat by Autorevolu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