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64/미니 GT

바퀴가 6개 달린 F1카 | 티렐 P34 by 미니GT

오늘날 F1 레이스카는 아주 빡빡한 규정에 맞게 제작됩니다. FIA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엔진, 서스펜션, 전자 장비, 공기 역학 디자인까지 자동차의 모든 요소들을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레이스카에 관련된 규정집만 해도 무려 170페이지가 넘습니다.

 

때문에 오늘날의 F1 레이스카들은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리버리를 다 벗겨 놓으면, F1 팬이 아니고서야 레이스카의 팀을 구분하는 것도 어려울 거에요.

 

 

리어 윙이 아예 없는 애로우즈 A2

하지만 F1의 규정이 그렇게 빡빡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습니다. 널널한 규정 아래 창의적이고 엽기적인 레이스카가 나왔던 낭만의 시절, 기상천외한 디자인과 기술들이 F1 레이스카에 적용되었는데요.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건 6륜 레이스카입니다. 도대체 왜 바퀴를 6개나 달아 놓은 걸까요? 6개의 바퀴를 달면 더 빨랐을까요? 왜 오늘날에는 6륜 F1 경주차가 안보이는 걸까요?

 

 

오늘은 F1 역사상 유일한 6륜 F1 레이스카, 티렐 P34를 1:64 다이캐스트 모델과 함께 알아봅시다.

 

 

제품은 미니 GT 티렐 P34 1976 스페인 GP 모델이고, 약 18000원 정도의 가격에 구매했습니다.

 

 

왜 바퀴를 6개씩이나?

짧고 간단하게 답하자면, FIA가 F1 레이스카는 바퀴가 4개여야 한다고 규정에 명시를 안해놔서요.

 

 

좀 더 길고 자세하게 설명해보면요. 자, 배경은 1970년대입니다. 당시 F1은 페라리가 압도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페라리는 자체 개발한 12기통 수평대향 엔진을 사용했는데, 이 엔진은 다른 팀들이 많이 사용하는 DFV V8 엔진보다 약 50마력 더 높은 출력을 냈습니다.

 

 

페라리를 이기려면 이 50마력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티렐은 공기역학에서 해답을 찾았는데요. F1 레이스카처럼 오픈 휠, 그러니까 바퀴가 외부에 노출된 자동차들은 공기 역학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바퀴가 외부에 노출되어 있으니 바퀴가 공기 흐름에 노출되는데요.

 

 

공기의 일부가 바퀴의 밑으로 빨려 들어가면, 자동차의 앞부분을 위로 들어올리는 양력이 발생합니다. 트랙에서 달릴 땐 자동차가 땅에 붙어 있는게 좋겠죠.

 

이 양력 문제는 보통 앞부분에 윙을 달아 다운포스를 만들어 해결합니다. 하지만 다운포스를 만들면 공기 저항을 늘어나기 때문에, 자동차의 직선 속력을 느리게 만들어요.

 

티렐의 아이디어는 이 바퀴를 공기 흐름에 노출되지 않도록 숨기는 것이었습니다. 바퀴가 양력을 발생시키지 않으니 다운포스도 필요 없고, 다운포스를 만들지 않으니 공기 저항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죠.

 

 

앞바퀴를 숨기는 방법은 2가지였는데요. 프론트윙을 앞바퀴를 가릴 수 있을만큼 넓게 만들거나, 앞바퀴를 프론트윙 뒤에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시 FIA는 프론트 윙의 너비를 1.5m로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후자의 방법을 선택해야했어요.

 

 

티렐의 엔지니어들은 프론트 윙 뒤에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10인치 휠을 개발했습니다. 문제는 앞바퀴는 코딱지만한 타이어, 뒷바퀴는 일반적인 거대한 타이어가 장착하니 앞쪽에 접지력이 너무 부족해 차가 죽도록 언더스티어가 났어요.

 

 

티렐은 이 언더스티어 문제를 굉장히 단순하게 해결했습니다. 앞바퀴를 2개 더 달아서요! 그러니 P34는 애초에 6륜 레이스카로 설계된 게 아니었어요. 공기 역학을 개선하려다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개의 바퀴를 갖게 된 것이죠.

 

 

명확한 장점과 단점

P34를 정면에서 보면 앞바퀴가 프론트 윙 뒤에 딱맞게 숨겨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티렐은 6바퀴라는 다소 과격한 방법을 통해 원래 의도한 공기 저항 감소라는 목적을 이루는데 성공했어요. 페라리보다 50마력이 부족한 엔진으로 직선에서 비슷하게 가속할 수 있었거든요.

 

 

이렇게 작은 타이어를 1:64로 어떻게 만든걸까요

하지만 그 누구도 사용해보지 않은 6륜 베이스를 사용하는만큼, 단점도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중 타이어 문제가 가장 심각했는데요.

 

10인치짜리 코딱지만한 휠을 쓰려면 코딱지만한 타이어가 있어야겠죠. 같은 속도로 주행하더라도 작은 휠이 큰 휠보다 많이 회전해야하기 때문에, P34의 앞바퀴에는 작지만 내구도도 뛰어난, 특별한 타이어가 필요했는데요.

 

티렐은 당시 F1에 타이어를 공급하는 굿이어에게 전용 타이어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굿이어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10인치용 타이어를 많은 돈을 부어 개발을 해도, 사갈 팀은 티렐 딱 한팀이었으니까요.

 

 

또 앞쪽에 바퀴가 2배가 되었으니 서스펜션도, 브레이크도, 조향 장치도 2배로 늘어나야했습니다. 자동차의 무게는 늘어났고 구조는 더 복잡해졌어요. 또 도로가 평평하지 않으면 6개의 바퀴 중 일부가 공중에 뜨면서 자동차를 다루기 어려워지는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10인치 타이어 때문에 생긴 디테일 하나. 운전석 양옆에 앞타이어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작은 유리창이 있었습니다. 너무 빠르게 달리면 앞타이어가 팽창하다가 터져서 펑크가 생기는 일이 자주 있었거든요. 그래서 P34의 최고 속도는 '앞타이어가 버틸 수 있는 정도까지' 였고, 드라이버는 레이스 내내 유리창으로 앞타이어의 팽창 상태를 체크하면서 달려야했어요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제치고도, P34은 데뷔 시즌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성공적인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보통 데뷔 시즌의 레이스카는 안정성 문제로 죽을 쑤는게 일반적입니다. 완주라도 하면 다행이고, 득점을 하면 대성공이죠. 

 

 

DFV 엔진에 포드 레터링이 있어요

P34는 1976년 시즌 꾸준히 포디움에 오르고, 심지어 스웨덴 그랑프리에서는 원투 피니시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결과적으로 티렐은 해당 시즌 챔피언십에서 3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냅니다.

 

하지만 P34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말한 타이어 문제가 발목을 잡았어요. 굿이어가 77년부터 10인치 전용 타이어 개발에 손을 떼면서, 티렐은 P34의 앞바퀴에 넣을 새 타이어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티렐은 앞바퀴에 이미 한시즌 동안 사용한 너덜너덜한 타이어를, 뒷바퀴에는 새 타이어를 끼웠는데요. 또 자동차 앞쪽에 접지력이 부족해 죽어라 언더스티어가 나면서 궁여지책으로 앞바퀴의 트랙 폭을 넓혔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앞바퀴가 윙 바깥으로 노출되게 만들어서, 결국 P34가 6륜 레이스카가 된 근본적인 이유를 소용없게 만들었습니다.

 

 

윌리엄스가 만든 FW07D. P34와 다르게 뒤에 한쌍의 바퀴를 더 넣었습니다

결국 티렐은 P34을 굴린지 딱 2년만에 P34을 은퇴시키고, 전통적인 4륜 디자인으로 회귀합니다. 이후 많은 팀들이 P34의 성공에 고무되어 6륜 레이스카의 개발을 시도했지만, 그 중 레이스 출전까지 개발이 진행된 레이스카는 없었어요. 이후 1983년에 FIA가 F1 레이스카는 4바퀴로 굴러가야 한다는 규정을 추가하였습니다.

 

 

FIA의 개정으로 6륜 레이스카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만일 FIA가 6륜 설계를 막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F1 레이스카들은 티렐 P34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F1 디자이너들에게 FIA의 규정 제약 없이 가장 빠른 레이스카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그려달라고 했을 때 많은 디자이너들이 4바퀴보다 바퀴 수가 많은 레이스카를 그렸거든요.

 

 

 

 

사용된 사진 자료

Williams FW07D by F1 Technical

1977 Tyrell P34 by F1

Tyrell P34 Front brakes by motorsport.com

Tyrell P34 tires by Speedhunters

Aerodynamics of open wheeler by Formlua 1 dictionary

Ferrari 312B by Scuderia Ferrari Club Riga

Ferrari Flat 12 by autoev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