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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핫휠

[핫휠] 포르쉐 959

포르쉐 최초의 슈퍼카이자, 그 당시의 기술을 한참 앞서간 기술력의 집약체입니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슈퍼카로 탄생하긴 했지만, 사실은 흙바닥을 구르는 랠리카를 목표로 만들어진 자동차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자동차는 포르쉐 959입니다. 포르쉐 959는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생산된 2도어 스포츠카로, 그룹 B 랠리카를 목표로 설계되었으며, 이후 양산차로 생산되었습니다. 

 

핫휠에서는 2가지 금형으로 959를 생산했는데, 1988년부터 2015년까지 생산한 금형은 양산차 버전의 959를, 2020년부터 생산한 금형은 랠리카 버전의 959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제품은 2021년 Car Culture 시리즈의 Deutschland Design 믹스로 출시되었습니다. 

 

 

 

 


 

1980년대, 포르쉐는 911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911은 포르쉐를 상징하는 브랜드였고, 포르쉐의 매출을 책임지는 스포츠카였지만 언제까지 911이 잘 팔릴지에 대한 의구심은 포르쉐 경영진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80년대에도 911은 20년 가까이 오래된 브랜드였고, 경쟁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포르쉐도 변화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포르쉐는 911을 기반으로 포르쉐가 가진 최고의 기술들을 집약해 완전히 새로운 스포츠카를 개발하기로 합니다. 신차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모터스포츠 경기가 필요했는데, 마침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그룹 B 랠리가 포르쉐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룹 B 랠리는 3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미친 차, 미친 선수, 미친 관중

80년대의 그룹 B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그룹 B는 한마디로 랠리의 무법 지대였습니다. 그룹 B에는 기술적 제한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레이싱 팀은 자동차에 뭔 짓을 해도 허용이 됐습니다. 덕분에 랠리카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고, 경기는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그룹 B에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다른 경기에서는 써볼 수 없는 신기술들을 그룹 B에서 시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룹 B 랠리카들은 따끈따끈한 신기술을 흙바닥에서 굴려보는 실험실이자, 자사의 기술력을 대중에게 뽐내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컨셉카 이름도 '그룹 B'였다고 합니다

그룹 B의 이런 성격은 포르쉐의 신차 개발 방향과 잘 맞아떨어져, 포르쉐는 그룹 B 랠리카를 목표로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합니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개발 프로젝트를 '그룹 B 연구'라고 불렀다고 해요.

 

그룹 B에서 활약할 수 있는 랠리카를 만들기 위해 포르쉐는 각종 최신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포르쉐가 한 번도 도전해보지 않은 4륜 구동은 물론이고 균일한 출력을 위한 트윈 터보, 전자 제어가 가능한 서스펜션 등 당시 양산차는 물론이고 레이스카에서도 선구적인 기술들이 신차에 집약되었어요. 

 

차체가 완전히 전소되고 뼈대만 남은 모습은 그룹 B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보여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룹 B를 겨냥해서 개발한 자동차는 그룹 B에서 달릴 기회도 얻지 못했습니다. 개발이 끝나고 양산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룹 B 랠리가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폐지되었거든요. 이미 개발이 마무리 되는 단계에 있던 프로젝트를 폐기할 수도 없고, 포르쉐는 그냥 개발을 마치고 양산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로드카로 양산된 959

흙바닥을 구르는 랠리카로 개발되었지만, 양산된 959는 아스팔트 위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요. 0-97km/h까지 가속하는데 단 3.6초가 걸렸고, 최고 속도는 305km/h를 달성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1986년 다카르 랠리를 뛰는 186번 959. 해당 차량이 다카르 랠리를 우승했습니다

물론 959가 랠리에서 활약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룹 B 랠리가 사라지자, 포르쉐는 양산차가 출시되기 1년 전, 1986년에 다카르 랠리에 출전시켰습니다. 

 

다카르 랠리는 13000km가 넘는 거리의 사막을 횡단하는 랠리로,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랠리 경기로 유명합니다. 완주하는 것조차도 어려운 다카르 랠리인데, 959는 3대가 출전해 1위, 2위, 6위로 완주합니다. 심지어 6위로 들어온 차량은 나머지 두 대를 지원하기 위해 출전한 차량이었다고 하네요. 

 

959가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과 다카르 랠리 우승을 동시에 거머쥔 것의 배경에는 시대를 앞서간 기술이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PSK (Porsche-Steuer Kupplung)인데, '더 영리한' 4륜 구동 시스템으로 실시간으로 앞바퀴와 뒷바퀴에 전달하는 출력의 배분을 다르게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앞과 뒤의 배분을 2:8로 유지하다가, 내장된 컴퓨터가 타이어의 접지력을 잃는 것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5:5로 전환해주었어요. 80년대에 내장된 컴퓨터가 자동차를 자동으로 제어한다는 건 정말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이었습니다. 후문으로는 닛산이 이걸 보고 깊게 감명 받아 개발한게 스카이라인 GT-R에 들어가는 아테사 E-TS라고 해요. 

 

959의 엔진도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스포츠카가 터보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터보는 엔진의 출력을 크게 올려줬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터보는 자동차의 배기 가스를 동력으로 회전하는데 배기가스가 충분하게 나오지 않는 낮은 rpm에서는 터보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충 이런 느낌으로 보면 돼요

덕분에 초기 터보 엔진들은 낮은 rpm에서는 빌빌대다가 특정 rpm을 넘기면 갑자기 파워가 쏟아져 나오는 현상이 흔했습니다. 터보의 크기를 무식하게 키우면 출력은 높아졌지만, 동시에 파워의 불균형한 전달도 심해졌어요. 이러한 터보 엔진의 특성은 자동차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운전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터보 엔진을 단계적으로 터보를 작동시킨다 하여 '시퀀셜 터보 엔진'이라고 부릅니다

포르쉐는 이런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2개의 터보를 엔진에 달았습니다. 조금 더 작은 터보는 적은 배기가스로도 회전해 낮은 rpm 구간을 담당하고, 좀 더 큰 터보는 배기가스가 많이 나오는 높은 rpm 구간을 담당했습니다. 덕분에 959의 엔진은 터보 엔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rpm 대역에 균일한 출력을 낼 수 있었습니다.

 


 

차체는 하얀색으로 도색되었고, 바퀴는 검은색으로 도색되어 흰색 차체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새하얀 차체가 마음에 들지만, 랠리카보다는 양산차 버전의 금형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금형의 표현이나 도색 디테일은 랠리카 버전의 959의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상고도 상당히 높고, 바퀴도 큼직큼직하며 양산 버전에는 없는 디테일들이 여럿 보입니다. 패키징의 카드 아트에서는 양산차 버전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정작 제품은 랠리카 버전으로 나온게 아쉽네요. 

 

전면부에는 작게 포르쉐 로고가 도색되어 있습니다. 보통 핫휠은 헤드라이트를 도색으로 표현하는데, 이번 제품은 투명 플라스틱으로 표현되어 있네요. 

 

후면에는 랠리카 버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산 버전의 브레이크등을 잇는 빨간 라인이 없고 구멍이 있으며, 지붕 위에 브레이크등이 추가적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도 양산 버전은 뚫려 있지만, 랠리 버전에서는 인터쿨러가 올라와 중앙이 막혀 있습니다.

 

양산 버전에는 이렇게 브레이크등 사이에 빨간 라인과 포르쉐 로고가 있지만
랠리카 버전에서는 빨간 라인 대신 구멍이 뚫려 있고, 커다란 인터쿨러가 엔진룸 바깥으로 튀어 나와 있습니다.

창문에는 밀어서 여는 벤트가 표현되어 있고, 창문에는 어두운 색으로 틴팅 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인테리어도 보이긴 하는데, 틴팅 때문에 디테일은 확인하기 어렵네요.

 

엔진으로 공기를 전달하는 흡기구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1:64 스케일 특성 상 구멍을 뚫지는 않고 모양새만 표현되어 있어요. 

 

만족스럽기도, 아쉽기도 한 제품입니다. 랠리카의 디테일을 생각보다 잘 표현해낸 점은 만족스럽지만, 카드 아트랑 동떨어진 외형이나 도색과 금형의 매치가 아쉽게 느껴집니다. 아예 랠리카 버전의 959를 원한다면, 2020년에 출시한 다카르 랠리의 리버리를 똑같이 재현한 버전을 구매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로드카 버전의 959가 프리미엄 버전으로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꼭 나왔으면 하네요. 

 

 

 

 

사용된 사진자료 

"Group B quattro" by Petrolicious

"959 concept car" by ledurado

"959 series 2" by Ed Callow

"959 rear" by Classic Driver

"1986 Dakar 959" by Porsche

"959 cutaway" by Motor1

"959 Engine" by Total 911

"Two stage serial turbo" by Garret Advance 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