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 제조기. 너무 위험해서 타던 사람이 죽고 과부가 생긴다는 말로, 위험한 자동차나 비행기에 붙는 별명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자동차가 이 별명을 얻었습니다. 닷지 바이퍼, 쉘비 코브라 427, 도요타 MR2 등등.. 이 자동차들이 과부 제조기가 된 건 단순히 위험해서가 아닙니다. 위험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자동차라는 뜻이죠. 죽음을 감수하고도 탈 정도로 매력적인 자동차, 그중 근본 중의 근본, 포르쉐 930 터보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자동차는 포르쉐 911 터보 (930)입니다. 930 은 1975년부터 1989년까지 생산된 911의 첫 터보 버전 모델을 지칭하는 코드명입니다.
오늘 소개할 제품은 2022년 핫휠 엔터테인먼트 시리즈에서 사이버펑크 2077과 콜라보로 출시된 제품입니다. 사이버펑크 2077에 등장한 930 터보를 재현한 제품으로, 3.0 터보 엔진을 쓰는 1977년 모델이라고 하네요.
포르쉐 ❤ 터보
때는 1970년, 모터스포츠에서 포르쉐는 엄청난 강팀이었습니다. 랠리, 르망, GT 등 카테고리를 가리지 않고 포르쉐는 우승을 차지했고, 포드나 페라리와 같은 강팀들과 나란히 경쟁했습니다.
1970년, 포르쉐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개최되는 레이스 시리즈, 캔앰 레이스에 참여하게 됩니다. 캔앰 레이스는 '뭐든지 허용' 하는 규칙으로 유명했는데, 엔진 크기도 무제한, 공기 역학 디자인도 무제한이었고, 바퀴 4개, 좌석 2개 달려있고 기본 안전 기준만 만족하면 허용이 되는 레이스였어요.
여기서 포르쉐는 917/10이라는 레이스카를 준비했는데, 무려 5.0L 12기통 엔진에 거대한 터보까지 달아 1000마력을 내는 괴물이었습니다. 이 차가 얼마나 빨랐냐면, 이 차를 처음 타보는 드라이버가 처음 달리는 서킷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였어요.
늘 그렇듯, 너무 빠른 차들은 주최 측의 미움을 사죠. 포르쉐를 대놓고 저격한 연료 제한 규칙이 생기면서 917/10은 캔앰 레이스 시리즈에서 빠지게 됩니다.
캔앰에서 터보로 재미 좀 본 포르쉐는 또 터보로 재미를 볼 레이스 시리즈를 찾았습니다. 포르쉐의 눈에 들어온 건 그룹 4 레이스였는데, 그룹 4에 참여하려면 호몰리게이션 규칙을 충족해야 했어요.
호몰리게이션 규칙이란 레이스에 참여하기 위해서 레이스카의 베이스가 되는 양산차를 일정량 생산해야 되는 규칙입니다. 즉 호몰리게이션 규칙을 충족시키려면, 레이스카의 공도 주행용 버전도 소비자들에게 판매해야 했죠.
포르쉐는 호몰리게이션용으로 911에 터보를 단 버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1970년대에도 911은 이미 출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점을 빼면 완벽한 스포츠카였는데, 그 당시 팔던 911S가 대략 170마력 정도를 냈거든요. 근데 여기에 터보를 다니 출력이 250마력까지 급상승했습니다.
그렇게 최초의 911 터보가 탄생했습니다. 911 터보라는 양산차가 탄생한 이유는 말 그대로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직 경주를 위해 태어난 경주마가 필수 조건 때문에 일반인에게 판매되는 상황이었어요.
포르쉐답지 않은 포르쉐
포르쉐가 가장 잘하는 일은 '말도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포르쉐의 가장 상징적인 브랜드, 911은 폭스바겐의 비틀을 기반으로 한 작은 스포츠카로 시작했습니다. 911은 오늘날까지도 1960년대와 똑같이 후륜 구동에 수평 대향 엔진을 차의 맨 뒤에 넣고 있지만, 수십 년 간의 개발과 개선을 거쳐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비틀이 356을 거쳐 911까지 변신한 이야기는 이 포스트를 참고해주세요
또 다른 예로 포르쉐 924는 폭스바겐 그룹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엔트리 레벨의 스포츠카로, 포르쉐의 자문 하에 폭스바겐이 설계했고 값싼 부품들로 떡칠된 자동차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포르쉐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개발과 개선을 했습니다. 원래 쓰던 아우디제 엔진 대신 포르쉐제 엔진을 새로 개발하고, 페이스 리프트도 2번이나 거쳐 평론가들과 소비자에게 찬사를 받는 럭셔리 GT카를 만들어냈습니다.
포르쉐의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역사와 비교하면, 930 터보는 좀... 부족했습니다. 안 그래도 운전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911인데, 여기에 터보까지 달아버리니 통제가 불가능한 자동차가 되어버렸어요.
문제를 고치기 위해 포르쉐는 갖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뒤쪽 접지력을 늘리기 위해 뒷바퀴의 간격을 넓혔지만, 부족했습니다. 브레이크도 큰 걸 달고, 서스펜션도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부족했습니다. 뒤를 누르기 위해 커다란 윙까지 달아봤지만, 부족했습니다. 심지어 원래 930에 들어가던 5단 트랜스미션 대신 4단 트랜스미션을 넣기도 했어요. 그 당시 기술력으로 만든 5단 트랜스미션으로는 터보의 힘을 버틸 수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과부 제조기의 탄생
결국 1975년부터 930 터보는 대중에게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930 터보는 포르쉐가 만든 911 중 가장 빠른 911이었습니다. 그 당시 독일의 양산차 중 930 터보보다 빠른 자동차는 없었어요. 무려 250마력을 냈는데, 지금 보면 쬐깐한 출력이지만 그 당시에는 로켓이나 다름없었습니다.
930 터보의 엄청난 출력은 많은 사람들의 도전 의식을 일으켰습니다. 탄생부터 경쟁자들에 비하면 부족한 출력에 시달리던 911이 터보를 달고 출력이 뻥튀기가 됐다? 이건 못 참죠. 수많은 모터스포츠계의 전설들이 이 자동차를 구매했고, 이후 고위층이 너도 나도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911 터보는 일종의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930 터보도 사람들의 관심에 보답하듯, 엄청난 성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운전자에게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도 일으켰죠. 아주 살살 몰면 운전자를 죽이려 들진 않았으니까요. 이 착각에 빠진 사람들은 930 터보를 타고 좀 더 차를 몰아붙였고, 곧 이 자동차의 본성을 알게 됩니다.
일단, 911은 기본적으로 엔진이 뒤에 있는 자동차입니다. 때문에 무게 중심도 극단적으로 뒤쪽에 잡혀 있었어요.
덕분에 코너를 돌다가 액셀에서 발을 떼면 뒷바퀴에 실린 무게가 앞으로 쑥 빠지면서 뒷바퀴가 미끄러지는, '리프트 오프 오버스티어'가 아주 쉽게 발생했습니다. 이 현상 때문에 초창기 911은 툭하면 오버스티어가 발생하기로 유명했어요.
거기에 터보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터보를 달면 출력이 증가하지만, 초기의 터보는 출력을 부드럽게 증가시키지 못했습니다. 터보를 돌리려면 충분한 배기가스를 필요해서 일정 rpm 이상으로 엔진을 돌려야 터보가 작동했거든요.
그리고 터보의 크기가 클수록 요구되는 rpm 양은 높았는데, 930 터보의 터보는 무식하게 컸습니다. 결과는 4000 rpm까지 끌어올려야 겨우 작동되는 터보였는데, 이 때문에 4000 rpm을 기준으로 자동차의 성격이 너무 달랐습니다. 4000 rpm 아래로는 빌빌거리다가, 4000 rpm을 넘기면 갑자기 로켓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코너를 돌다가 살짝 액셀을 밟아 4000 rpm을 넘기면 갑자기 넘치는 출력이 훅 들어오며 미끄러지게 되었습니다.
뒤쪽 엔진의 무게 배분과 무식한 터보가 합쳐져 930 터보는 시시 틈틈 운전자를 죽이려는 자동차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911도 뒤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려있고 넘치는 출력을 갖고 있지만, 이젠 4륜 구동이나 전자 제어 장치처럼 운전자를 도와줄 수 있는 기술이 많이 나왔죠. 1970년대에는 운전자가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운전 실력과 운뿐이었습니다.
930 터보가 요구하는 기술은 전문 드라이버에게도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 악명 높은 그룹 B 랠리의 월드 챔피언, 발터 뢸마저도 930 터보가 다루기 어렵다고 평할 정도였죠.
문제는 930 터보는 전문적인 드라이버들만 탈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니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누구든지 살 수 있는 양산차였죠.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자동차의 키를 일반인들에게 넘겨준다? 결말은 뻔했죠.
930 터보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발생하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렸습니다. 그중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생겼구요. 일례로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 펠레 린드버그가 930 터보를 제어하지 못해 벽에 들이받아 26세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911의 희생양들이 늘어나자 포르쉐의 위험성이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합니다. 포르쉐는 소송에 휘말렸고, 배상비로 수십억을 지불해야 했어요.
포르쉐는 930 터보는 대중들에게 판매하기에 너무 위험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후 포르쉐는 911 라인업에서 안정성과 안전성을 개선하는데 집중합니다. 오버스티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4륜 구동을 도입하고, 뒷 타이어 폭을 넓히고, 차체 크기를 키우고, 터보를 개선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어요. 993 세대부터는 터보 모델에 4륜 구동이 적용되기 시작했어요.
물론 포르쉐가 안전을 위해 성능을 포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어림도 없죠! 대중적인 터보 모델까지는 안정성에 집중하는 대신, 라인업을 확장해 매니악한 모델들에는 안전과 타협이 없는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포르쉐의 타협 없는 성능과 재미에 대한 추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차체는 은색, 빨간색, 검은색 3색으로 도색되어 있고, 여기저기 텍스트가 도색되어 있습니다. 휠은 검은색에 크롬 액센트의 푹스 스타일 휠이 장착되어 있네요.
인게임 설정에 따르면 이 자동차는 전설적인 락밴드, 사무라이의 리드보컬 조니 실버핸드의 자동차입니다. 생산연도가 1977년으로 인게임에서는 딱 100살이 되어 전 세계에 몇 남지 않은 클래식 카라고 하네요.
930 터보의 배경을 알게 되니 조니 실버핸드의 캐릭터와 딱 맞는 자동차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 친구 구하겠다고 기업 본부에 냅다 핵폭탄을 터뜨리는 사람이라면 목숨 걸고 타는 자동차 정도는 타야죠.
전면부에는 911의 상징인 동그란 헤드라이트가 도색되어 있고, 본넷에는 포르쉐 로고가 도색되어 있습니다. 인게임과 동일하게 헤드라이트를 노란색으로 도색한 게 포인트네요. 번호판도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인게임의 것과 동일하게 도색되어 있습니다.
후면에는 사무라이 레터링과 후미등에 포르쉐 로고가 도색되어 있습니다.
930의 특징 중 하나인 고무 범퍼가 금형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미국 교통법에서는 1972년부터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에 '저속에서 앞이나 뒤로 충돌이 발생할 시 조명과 연료 시스템이 파손되지 않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제조사들이 미국 수출차에 고무 범퍼를 달곤 했는데, 911의 경우 유럽과 미국 모두 고무 범퍼를 단 버전을 동일하게 생산했어요.
930 터보의 상징인 웨일 테일 스포일러도 금형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911에 달리는 스포일러는 2가지로 구분해서 부르는데, 74년식 카레라 RS에 처음으로 추가된 스포일러를 오리 꼬리랑 닮았다 하여 '덕 테일', G바디 911부터 추가된 스포일러는 고래 꼬리 같다 하여 '웨일 테일'이라고 불러요.
인게임 차량과 비교를 위해 오랜만에 사이버펑크 2077을 켜서 찍어봤습니다. 인게임 차량은 핫휠보다 꽤 지상고가 높게 모델링 되었네요.
금형 퀄리티나 도색 모두 마음에 드는 제품입니다. 최근 공랭식 911의 새로운 금형이 나오지 않아 옛날 금형을 많이 우려먹었는데, 이번에 930 터보의 새 금형이 예쁘게 나와 만족스럽네요. 도색은 색 조합이나 사이버펑크 2077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마음에 들지만, 70-80년대의 930 터보의 도색을 제대로 재현한 제품도 나왔으면 합니다.
사용된 사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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