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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핫휠

[핫휠] 마쯔다 787B

1991년, 르망 24시. 일본에서 온 레이스카가 고막을 찢는 굉음을 내며 질주합니다. 24시간이 지나고 레이스가 종료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이 작은 일본 회사의 레이스카가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때 끊임없이 도전한 한 회사의 이야기이자, 골리앗을 때려잡은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자동차는 마쯔다 787B 입니다. 마쯔다 787은 마쯔다에서 그룹 C 에서 경쟁하기 위해 만든 레이스카이며, 787B는 91년 시즌을 위해 업데이트한 버전입니다. 

핫휠은 2018년에 마쯔다 787B를 프리미엄 라인업에서 출시했으며, 이 제품은 2020년 레플리카 엔터테인먼트 시리즈의 그란 투리스모 믹스로 출시되었습니다. 

 

 


1. 마쯔다하면 로터리, 로터리하면 마쯔다

 

1951년,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인 NSU에서 새로운 방식의 엔진을 개발합니다. 발명가의 이름을 따 반켈 엔진이라 부르기도 하고, 로터가 빙빙 돌아간다하여 로터리 엔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피스톤 엔진과 로터리 엔진의 흡기-압축-폭발-배기 과정. 딱 봐도 구조가 많이 다르죠?

'공기와 연료를 점화해 폭발을 통해 힘을 얻는다'는 원리는 기존의 피스톤 엔진과 같지만, 로터리 엔진의 작동 방식은 매우 달랐습니다. 피스톤 엔진과 비교해 작은 크기, 넓은 RPM 대역, 멋진 배기음 등 다양한 장점이 있었지만, 낮은 내구도와 구린 연비 등 단점도 명확한 엔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이전까지 없었던 엔진이라는 점이었습니다. 100년 가까이 피스톤 엔진을 개발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포기하고 새로운 엔진에 투자할 정도로 큰 메리트를 느끼긴 어려웠죠. 새로운 엔진이 개발되었지만 그걸 사용하는 자동차 제조사는 드물었습니다.

 

마쯔다의 첫 로터리 엔진 양산차, 코스모

진지하게 로터리 엔진에 투자한 회사는 단 하나, 일본의 마쯔다였습니다. 마쯔다는 로터리 엔진의 잠재력을 보고 60년대부터 로터리 엔진을 넣은 양산차를 만들었습니다. 

 

마쯔다는 모터스포츠에서 로터리 엔진의 성능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60년대부터 꾸준하게 모터스포츠에 도전을 했으나, 주목할만한 성과를 이루는데는 실패했어요. 오랜 시간 집적된 기술과 데이터가 큰 차이를 만드는 모터스포츠에서 비교적 '어린' 로터리 엔진은 경쟁에서 불리했습니다.

 

하지만 마쯔다는 로터리 엔진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모터스포츠에 투자했습니다. 긴 시간 외로운 싸움을 한거죠.

 

2. 로터리 엔진의 퇴출?

 

80년대 말, 마쯔다는 그룹 C 에 레이스카를 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마쯔다의 목표는 가장 명성 높은 내구 레이스, 르망 24시의 우승이었어요. 하지만 곧 마쯔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집니다. 

 

바로 92년 시즌부터 로터리 엔진을 사용한 자동차의 출전이 금지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로터리 엔진의 성능이 너무 뛰어나서 주최측에서 금지시켜버렸다는 오해가 많습니다. 

 

마쯔다 757. 르망에서 첫 해에는 완주 실패, 다음 해에는 7위, 그 다음해에는 15위를 기록했습니다

사실 마쯔다 레이스카는 고성능이 아니었고, 마쯔다 팀은 우승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로터리 엔진은 늘 출력 부족 문제에 시달렸고, 르망 24시에 참여는 오래했지만 5위권에 든 적도 거의 없었죠. 마쯔다 팀은 언더독의 아주 적합한 예시였어요. 

 

경기 중 407km/h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던 푸조 P88

문제가 되었던 건 그룹 C였습니다. 하나는 그룹 C 규칙에서 레이스카들의 엔진 배기량에 제한을 안 걸었더니 엔진 출력이 미친듯이 높아지면서 자동차가 위험할 정도로 빨라진 것이었고요. 또 하나는 그렇게 빠른 레이스카가 등장하자 그룹 C의 인기가 너무 좋아졌던 것입니다. 

 

그룹 C가 F1의 인기를 위협하는 상황에 불만이 많았던 주최측은 조치를 내립니다. 레이스카의 출력에 고삐도 맬 겸, 그룹 C에 참가하는 제조사가 F1에도 참가하도록 유도할 겸, 그룹 C의 레이스카가 F1와 동일한 3.5리터의 배기량의 엔진을 사용하도록 강제한 것인데요. 

 

피스톤 엔진은 1번의 4행정 동안 1번 흡기하지만, 로터리는 3번 흡기할 수 있어요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로터리 엔진은 구조적으로 피스톤 엔진과 너무 달라 같은 방식으로 3.5리터 제한을 걸 수 없었습니다. 로터리 엔진은 한 번의 행정 당 배기 사이즈의 3배에 달하는 공기를 흡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3.5리터의 로터리 엔진이라면 10.5리터의 공기를 빨아먹는 괴물이 되거든요. 

 

그렇다고 로터리 엔진을 위해 예외를 만들자니, 로터리를 쓰는 팀은 마쯔다가 유일했습니다. 주최측은 규칙을 복잡하게  만드는 대신, 그냥 92년 이전까지 사용된 엔진을 전부 퇴출시키고 3.5리터 피스톤 엔진을 쓰게 만들었어요. 그러니 주최측이 로터리 엔진만 금지시킨게 아니라, 과거에 사용된 모든 엔진을 모두 금지시켜버린 것이죠. 

 

3. 마지막 기회

따라서 91년 시즌은 마쯔다가 로터리 엔진을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끝장을 봐야될 때가 온거죠. 마쯔다는 지난 수십년 간 로터리 엔진을 모터스포츠에서 굴리며 얻은 모든 기술을 집약해 새로운 레이스카를 개발합니다. 

 

먼저 엔진의 개선이 시급했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13J 엔진에 점화 플러그는 2개에서 3개로 늘리고, 에이펙스 씰이 자주 깨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라믹으로 소재를 변경했으며, 모든 rpm 대역에서 최대 토크를 내기 위해 가변 흡기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결과물인 R26B 엔진은 무려 10500rpm까지 회전이 가능하고 930마력을 내는 괴물이었어요.

 

하지만 마쯔다는 안정성을 위해 7000rpm에 700마력으로 출력 제한을 겁니다. 르망 24시는 단거리 질주가 아닌 장거리 유지력이 중요한 레이스이니까요. 덕분에 마쯔다는 91년 시즌에서 누구보다 내구성과 연비가 좋은 엔진을 얻게 되었습니다. 

 

 

안정성과 코너링을 위해 섀시와 바디도 모두 재설계 되었습니다. 섀시는 카본 모노코크 (통짜로 만드는 방식) 로 만들었고, 바디도 카본과 케블라 소재로 만들어 최대한 무게를 줄였습니다. 공기역학을 위해 바디 디자인도 윈드 터널에서 실험을 하며 재설계했구요. 브레이크도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던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를 장착했습니다.

 

4. 91년 르망 24시의 기적

강력한 우승 후보인 벤츠, 재규어, 포르쉐 등등 많은 레이스팀이 무게 패널티를 받았습니다

91년 르망 24시에서는 특별한 규정이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3.5리터 엔진 규정이 '소프트하게' 적용된 것이었는데, 주최측이 요구한 3.5리터 엔진을 준비해오지 않은 팀에게는 패널티를 주었습니다.

 

패널티의 내용은 밸러스트 (무게추) 를 달아 레이스카의 무게를 1톤으로 맞추게 한 것이었는데요. 때문에 많은 상위권 레이스카들이 원래 무게보다 수백kg 무거운 상태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마쯔다는 무게 패널티를 면제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자신들이 쓰는 엔진은 2.6리터의 작은 자연흡기 엔진이라는 점을 어필했습니다. 물론 로터리 엔진이라 7.8리터의 공기를 먹긴 했지만, 워낙 경쟁력이 부족한 팀이었기 때문에 마쯔다의 요구는 큰 반발 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덕분에 마쯔다의 레이스카, 787B는 밸러스트 없이 830kg의 가벼운 무게로 레이스를 시작합니다. 마쯔다에게 우승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어요.

 

'실버 애로우' 자우버-벤츠 C11

하지만 그 정도로는 우승하기에는 부족했나봅니다. 787B는 이전에 비하면 크게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경쟁팀과 비교하면 턱없이 느렸습니다. 예선전에서 787B의 기록은 1등을 한 벤츠의 C11보다 12초나 느렸거든요. 경쟁은 여전히 치열했고, 마쯔다와 우승의 거리는 여전히 멀어보였습니다. 

 

그렇게 본선이 시작되었습니다. R26B 엔진의 뛰어난 내구성과 연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감독은 레이서들에게 연료를 아끼지 말고 최대한 공격적으로 운전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830kg의 가벼운 무게와 공격적인 전략 덕분에 787B는 재규어, 포르쉐, 푸조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앞서는데 성공합니다. 

 

살벌하게 랩타임을 깎던 C11. 해당 차량은 뉴비 시절의 F1 레전드 미하엘 슈마허가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마쯔다에게 남은 경쟁자는 3대의 벤츠 C11이었습니다. C11은 무게 패널티를 받고도 너무 빨랐습니다. 787B가 낼 수 있는 최고 랩타임이 C11의 평균 랩타임보다 느렸어요. 마쯔다가 할 수 있는 일은 빠른 페이스를 유지해 최대한 벤츠를 압박하며 기회를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동안 마쯔다가 쏟아부은 노력을 보상하듯, 마쯔다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앞서 달리던 C11 중 1대가 장애물을 밟고 고장나며 피트인하게 되었습니다. 40분 뒤, 또 다른 C11는 기어박스 문제가 생기며 또 피트인을 하게 되었고요. 이제 마쯔다와 르망 24시 우승 사이에는 단 1대의 C11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C11가 연료를 아끼기 위해 페이스를 늦추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787B는 여전히 빠른 페이스를 유지하며 C11와 격차를 줄이고 있었고요. 하지만 마쯔다팀의 계산에 따르면 우승은 불가능했습니다. 마쯔다가 C11을 따라잡기 전에 24시간이 끝날 것이었거든요.

 

그러던 와중, 마지막 기적이 일어납니다. 1등으로 달리던 C11이 엔진 과열 문제로 레이스를 포기하면서, 마쯔다 앞에 남아있는 경쟁자가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엄청난 운과 기회를 잡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마쯔다의 집념이 우승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787B는 기적적으로 르망 24시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소자본의 작은 일본 회사가 만든, 타고나게 느린 레이스카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마쯔다 787B는 최초의 아시아권 르망 24시 우승자이자, 오늘날까지도 유일한 로터리 엔진을 사용한 르망 24시 우승자입니다. 

 

 

 


차는 무광 블랙으로 도색되어 있고, 그란 투리스모 로고가 여기저기 도장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경기를 뛰었던 레이스카의 리버리는 아니고, 그란 투리스모 5 한정판을 구매하면 얻을 수 있었던 787B 스텔스 모델을 재현한 것 같습니다.

 

약간의 도장 디테일을 제외하면 정말 빼다박았습니다

전면에는 마쯔다, 그란 투리스모, 폴리포니 디지털 로고와 헤드라이트가 도색되어 있구요.

 

윈드쉴드에 그란 투리스모 스티커가 도색되어 있습니다. 벤츠 190E처럼 수직 와이퍼도 표현되어 있네요.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윙이 구부러져 있어요..

후면에는 커다란 리어 윙이 달려 있습니다. 정말 아쉬운... 걸 넘어서서 열받는 부분은 마텔의 부실한 패키징 때문에 윙이 휘어진 상태로 왔습니다. 드라이기로 열을 줘서 수 차례 펴봤지만 그래도 완벽하게 복구하진 못했네요.  

 

카 컬쳐처럼 단품 블리스터에 포장된 제품은 이런 현상이 자주 보이고, 여러 대가 함께 포장된 제품에는 없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윙이 말짱한 787B를 사고 싶다면 현재로선 팀 트랜스포트가 유일한 방법인 것 같네요. 

 

위에서도 도색 디테일을 여기저기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콕핏 오른쪽에 마스터 파워 스위치 표시가 도색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구요. 앞바퀴 아치에 에어 덕트가 도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차의 앞에서 뒤로 이어지는 검은색 스트라이프도 도색되어 있네요. 

 

레이스카는 사고가 나면 빠르게 전력을 끊을 수 있도록 손에 닿기 쉬운 곳에 마스터 파워 스위치 (킬 스위치)를 둡니다. 

 

한 가지 기믹으로 뒷쪽 카울을 탈착할 수 있습니다. 핫휠은 프리미엄 라인에서는 기믹을 모두 생략하고 RLC급에서만 기믹을 넣어주는데, 프리미엄급에서 이런 기믹이 있는 제품이 있다는게 반갑네요. 

 

카울을 제거하면 뒷쪽 서스펜션과 스트럿 바 아래에 엔진이 디테일하게 표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금형, 도색 퀄리티, 그리고 프리미엄급에서 희귀한 기믹까지 만족스러운 제품이었지만, 휘어진 윙 때문에 정말 실망스러웠던 제품입니다. 핫휠에서 아직 가장 인기 있는 르망 24시 우승자 버전의 787B를 출시하지 않았으니 분명 바리에이션으로 출시할텐데, 그 땐 패키징을 재설계하던, 윙의 재질을 바꾸던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네요. 

 

 

 

사용된 사진자료

"Piston and rotary engine comparison" by Car Throttle

"Cosmo L10B" by Mytho88

"Mazda 757" by Fabrice Pluchet

"R26B" by Spannerhead

"91 le mans" by legendsofracing

"91 le mans 787b" by Topgear

"Sauber-Benz C11" by Slomomotorsports

"C11 Pitstop" by Dailysportscar

"787B Stealth model" by Formula Racer